“일:하다” 또는 작가, 박정근ㆍ이병구ㆍ최상진의 일. 집은 지붕과 기둥과 벽 등등에 의지하여 공간을 점유하고 그 모습은 온전히 우리에게 집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것이 ‘집’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집을 만들고 그 집에 깃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작가이면서 목수인 박정근, 이병구, 최상진은 집을 짓는다. 그들은 꽤 오랜 시간을 건축현장에서 한 팀을 이루어 일해 왔다. 집을 짓는 일은 작은 집이라 하더라도 1년 정도의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목수 일 외에도 전기배선과 가구를 짜 넣는 일까지도 각자 맡아서 일한다. 집을 짓는 일은 고되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들은 기꺼이 함께 일한다. 운이 좋게도 나는 몇 년 전에 세 사람이 어떤 일을 같이 하는 순간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 일은 능숙하게 진행이 되었다. 세 사람은 서로 말을 거의 건네지 않고도 때에 따라 무슨 일이 필요한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주의 깊게 각자가 필요한 일을 하며 움직였다. 관찰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행위는 전혀 의도되지 않았음에도 하나의 정교한 춤사위처럼 모순이 없는 삶의 흐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하고 있음’의 조화로움이었다. 무엇이 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예술로 이해되는 작품들은 작가의 개개인의 삶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일까? 저 조화로움은 의도적으로 설계되는 예술 활동으로는 어떻게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질문은 그때 내게 다가온 것이다. 전시 “일:하다”는 박정근ㆍ이병구ㆍ최상진이 함께 오래된 작은 집을 골조만 남기고 다시 짓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그 집에서 살게 될 주인, 함경록씨가 찍은 영상은 공사과정에서 세 사람이 각자 맡은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벽을 허물고 낡은 기둥을 교체하고 지붕을 새로 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들은 해야 할 일에 온전히 몰두한다. 여기서 집은 서로서로가 “정성껏” 만들어내는 변화에 깊이 의지하여 하나의 과정으로 있다. 따라서 순간순간 벌어지는 모든 변화는 세계 내에서 그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 심리적 공간에서 세계란 그들이 지금 ‘하고 있음’에 온전하게 머물고 “하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으로써 눈앞에 꺼내놓는 것이다. 즉 그들이 일상적 삶을 통해 그 자체로 구현하는 것은 바로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고 모순 없이 세계와의 조화를 살아가는 ‘하고 있음’이다. 집은 저 조화 안에서 완성된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하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는 일상의 기적이기도 하다. 이것이 너무나 평범해서 우리는 ‘일’이라고 말할 뿐이다. 박정근ㆍ이병구ㆍ최상진의 작품은 그들 고유한 삶과 상응한다. 작품에 투영되는 삶의 모습은 투박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도 그들 작품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작업들이 포착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즉물적인 이해다. 이것은 ‘솔직함’이라는 특질로 말해질 수 있는 직접성, 단순성으로 나타난다. 직접성은 목수일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그들의 이해가 세계를 노동을 통해 일구어내는 그 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 힘은 좋아하는 마음이며 삶에 대한 그들의 시적 시선이다. “목수 일을 하면서 버려지는 부산물”을 가지고 박정근은 노동과 그 즐거움, 소망을 그린다. 이병구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그릇을 만들고 나무 조각을 한다. 최상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을 닮은 덤덤한 풍경화와 정물화를 그린다. 그들의 작품은 마치 들풀처럼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비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 나면 해가 나는 대로 정성껏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그대로 “닮았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 작가이기도 한 목수들의 ‘하고 있음’이 가진 삶의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삶의 심미성은 우리가 서늘한 저녁, 산책을 하다가 문득 느끼는 만족스러움과 자연스러운 있음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적 삶 또한 큰 의미가 없이도 다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일은 이 덤덤한 작가들이 ‘일하다’의 의미를 묻는 전시의 기획 의도를 낯설어 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내 생각은 터무니없었다.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기획자의 생각에 응해준 작가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삶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들의 솔직한 전시는 시작되었다. 독립큐레이터, 정현주.8월16일,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