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밭매다 딴짓거리" 삶의 딴짓거리: 고창 라성리 마을 아짐들과 작가 이육남의 그림책 우리는 살면서 종종 생각하지도 않은 딴짓거리를 하곤 한다. 이육남과 라성리 마을 아짐들처럼 말이다. 이 년 전 마을 사람들은 작업실을 찾아 귀향한 한 사람을 품에 안았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그 흔한 가게 하나 없는 마을에서 농사일도 할 줄 모르는 작가와 한평생 농사만을 업으로 삼아온 아짐들의 만남, 그로부터 비롯된 삶이란 어떤 것일까? 마을 아짐들의 삶은 질기고 고되다. 농번기 때 아짐들은 아침 5시 반에 인삼밭에 가서 일하고 고사리를 꺾고 파 모종하고 복분자 밭을 맨다. 평균 나이 70이 넘은 할매들이 말이다. 그들의 쉼 없는 일상에 이육남은 흔연히 끼어들어 말을 건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시냐고 예전에는 어떻게 살아오셨냐고. 귀 기울여 듣는 그에게 아짐들은 일손을 멈추고 쑥스러워하며 “처녀적 좋아 했던 댕기머리 총각”을, “검은 치마입은 어릴적 친구”를 하나 둘씩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모여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은 모두를 울고 웃게 했으며” 아짐들은 그 이야기들을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책마을 해리에 모여 작가 이육남과 함께 다시 그림으로, 일기로, 판소리로, 민화로 그리고 만들기 시작했다. 라성리 아짐들의 일상은 여전히 하루하루 많은 일들로 분주하지만 조금은 달라졌다. 삶은 이제 그 딴짓거리를 통해 순간순간이 재미난 놀이거리로 이야깃거리로 다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육남은 그림책 『수궁가』로 잘 알려진 민화 작가다. 이전까지 작가로서의 그의 관심은 “무언가 근사해 보이는 어떤 것”을 주목하고 그림책으로 표현하고 만드는 데 있었다. 한번도 서울을 떠나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그는 뜬금없이 서울의 집을 놔두고 라성리의 책마을 해리에 작업실을 얻어 귀향했다. 어쩌다보니 그는 바닷가의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농사일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할매들”이 어떻게 밥을 해먹고 소일거리를 함께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그곳에서 만난 것은 무언가 근사해 보이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 할매들의 지난한 일상,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인 삶의 텁텁한 일상이었다. 그 삶은 이육남이 “특별하고 소중한 것,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는 “그분들이 얼마나 특별한 일상을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난 이년동안 그는 라성리 아짐들이 일상의 속내와 삶의 이야기를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다시 그 표현들이 여러 권의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책들은 라성리 아짐들의 딴짓거리지만 이육남 개인 삶의 딴짓거리기도 하다. 『책마을 아짐 일기책』에서 나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한다. 이 책은 그림일기라는 형식을 빌려와 아짐들의 일상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그들과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이육남이 함께 형성한 관계적 공간 또한 드러낸다. 즉 이육남의 시선은 아짐들의 일상을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내는 촘촘하고 견고한 끈이다. 이 일시 멈춰진 세계에서 나는 아짐들의 삶처럼 내 어머니의 삶이,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삶이 또한 그러했음을, 내가 그러한 삶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다시 우리가 저 세계와 폭넓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한다. 그 이해를 통해 내가 세계의 일부분임을, 다시 세계가 나의 일부임을 느낀다. 더욱이 이것은 라성리 아짐들과 이육남이 함께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삶에 나 자신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행복감이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적인 삶을 활기로 채우는 힘이다. 예술의 공공성이 무엇인지 요란하게 따져 묻는 모든 논의들은 소통과 조화를 완성하는 이 구체적인 삶의 딴짓거리 앞에서 고요히 멈출 수밖에 없다. 정현주, 독립 큐레이터, 광주, 11. 20.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