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희 개인전2022.12.3-12.25 초대의 말 2022년의 마지막 달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은 내 일상과 주변을 다시금 가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포도나무는 가족의 일상과 삶의 수더분함에 주목하는 박환희의 회화세계를 소개합니다. 전시 「오늘」에서는 일상의 많은 단편들이 자유롭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들과의 놀이처럼 펼쳐집니다. 박환희는 작가로서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지만 이 기교들을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그림의 소재로 끌어들입니다. 그의 작업들은 재료의 물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면서 양림동의 ‘숱 많은 단발머리 버드나무’처럼 생활에 부여하는 작은 의미로 반짝거립니다. 박환희의 회화가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행복감은 이러한 의미에서 비롯됩니다. 삶이란 굳이 정해진 의미가 없기에 우리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서 그와 같이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지금, 삼가며 박환희의 담백하고 다정한 회화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전시 서문] “정의해야할 것은 바로 화가 작업이 시작하기 이전에 화폭 위에 있는 이러한 주어진 ‘여건들’이다. 그리고 이 여건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장애물이고, 어떤 것들이 도움을 주는 것이며, 혹은 준비 작업의 결과들인가를 규정해야한다.”들뢰즈, 『감각의 논리』 pp. 101-102. 1.전시 「오늘」은 좀처럼 알 수 없는 종류의 수집품, 즉 잔설봉, 점, 선, 어딘가 사람처럼 보이는 형태들, 거미줄처럼 생긴 것, 입방체, 제주식물들 등등의 목록을 망라한다. 모여 있는 것들은 언 듯 행간을 뛰어 넘는다. 거미가 털모자와 마주치고, 계속해서 마름모 도형과 우연히 시작한 낙서와도 마주친다. 그 가운데에는 선인장인지 초록물감 흔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분류가 불가능한 형상도 자리하고 있다. 박환희의 시각적 수집물은 서로 근접하지도 않고 크게 관계없는 이미지의 단편들이 배열되어 있다. 다만 저 간격들은 선뜻 말하기 어려운 어떤 내면의 느낌들을 우리에게 촉발하고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선택과 분류처럼 보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의 회화적 행위, 말하자면 그의 내면의 풍경과 선택의 순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내게 주어진 일은 그리는 행위에 적용된 논리를 드러내서 행간을 뛰어넘는 이미지들의 간격을 일차적으로 언어화하는 것이다. 2.그리는 이는 순백의 화면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주변의 많은 잡다한 것들을 자기 인식 속에 담고 있다. 이 내면의 풍경에는 그의 작업을 이끄는 두 겹의 논리가 흐른다. 하나는 그의 회화에서 거부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는 행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다. 먼저 박환희의 작업에 있어서 미술학교에서 배운 기교들은 “잘 그린 그림을 위한” 것으로써 거부해야할 대상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예술형식들은 어떤 기준으로 주어지며, 모든 그리기 위한 기교들은 이들 미술사적 관행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사회·문화적으로 익숙한 표준점을 반영한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기교란 ‘판에 박힌’ 경험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분리 불가능한 그의 일부가 되어버렸기에 저것들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화면을 점유하여 그리는 행위에 총체적으로 개입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기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그리는 행위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이 거부의 논리가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지점이 바로 일상이다. 한편으로 엄마로서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은 그가 “자유롭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그리기의 근본 요소들”에 주목하고 관찰하게 된 계기다. 그리기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는 자신의 판에 박힌 것들을 차단하려는 모든 탐색을 생활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그리는 행위에 개입하는 것은 일상의 사건이다. 화면의 돌발적 흔적, 계산이나 시각에 의지하지 않는 감각적 얼룩과 형상들은 “일상을 살며, 자극받은 순간들이나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갈 때, 혹은 다 같이 이런저런 일을 벌이며 그때마다 보고 느낀 것들”이다. 그에게 각인된 여건들은 이러한 실행에 의해서 흔들리고 지워지고 뒤덮인다. 박환희의 회화적 행위는 더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에 다가가기 위해 방해가 되는 오랜 규범적 요소들, 자기 안의 익숙한 상투성을 버리는 데에서 시작한다. 일상에서 겪는 내면의 느낌들에 주의하고, “다양함 가운데 통일되는 뭔가를 포착하고” 우연한 만남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적 시선은 이미 만들어진 인식들, 기억들에 맞서는 두 겹의 논리로 엮여 있다. 이 마음의 논리는 틀에 얽매이지 않도록 그의 개별적인 세계를 돌출시킨다. 3.일상의 잡다한 일들은 반복된다. 빛나는 순간들도 존재한다. 가족과의 삶은 특별하지도 가장 아름답지도 않다. 혹은 덤덤하고 슴슴하게 흘러간다. 생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누구나 크게 마음에 두지 않지만 삶의 ‘자연스러운 행복감’은 그의 회화 어디에든 스며있다. 박환희에게 맞닿은 ‘오늘’은 그의 시적 언어에 의해 포착되어 무심하게 투박하게 천진한 형상과 패턴과 색의 단편으로 표출된다. 이미지 조각을 이어내는 의외의 마주침은 두 겹의 논리에 따르는 선택의 결과다. 행복감은 두 겹의 논리를 감싸고 흐르게 하는 그의 근본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그의 회화는 우리를 특별하지 않은, 그래서 아름다운 삶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마치 우리네 삶이 굴러다니는 파도나 빨간 고래처럼 보이는 얼룩이나 바람 한 조각이면 이미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모든 진부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면서 11. 29. 2022. 정현주, 독립연구자, 철학박사